본문 바로가기
Activities/42Seoul

[42Seoul] 7기 1차 라피신 후기

by veggie-garden 2022. 6. 25.
📍무척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같이 읽으면 좋은 글: [42Seoul] 42 서울 관련 소소한 팁 (+맛집 추천)

 

결과부터 말하자면, 합격했다....!

눈물 난다... 8ㅁ8

7기 1차가 5월 6일에 끝나고 장장 46일 만에 결과가 나왔다. 피신은 4월 초부터 5월 초까지, 결과 발표는 6월 말, 본과정 시작은 7월 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2 서울 합격을 위한 3개월 남짓의 시간. 실은 본과정을 가기 위한 내 여정은 이것보다 더 길었다. 작년 봄, 나는 아래와 같은 메일을 받았다.

그때 나는 정말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었다. 당시는 코로나 때문에 격일제인지라, 무조건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피신 특성상, 출석일에 최대한 클러스터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통학 3시간, 로그 시간을 10시간 넘게 찍으면서 버텼다. 그러나 나의 실력이 너무 부족했었다. 나는 비전공자였고, 코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포인터니 자료구조니 이런 건 당연하고, 재귀와 같은 간단한 알고리즘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백지 그 자체였다. (피신이 끝날 때도 간단한 재귀는 사용할 수 있으나 재귀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내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이 오려나.) 재도전이 불가능하던 시절이었기에 절박하게 했으나, 다른 사람들을 뛰어넘기에 4주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나는 떨어졌지만, 코딩을 그만 두진 않았다. 알고리즘에 대해서 공부하고, PS를 시작하고, 스터디를 했다.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막막했지만, 피신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아무런 구조 장비 없이 홀로 수영해본 경험이 나를 도왔다. 피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절박하고 간절하게, 그리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그래밍은 어렵지만, 재밌다. 이것이 비록 떨어졌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2022년 새해가 밝고, 아는 사람들이 42 재도전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6기를 하려 했으나 선착순 내에 들지 못한 탓에 7기를 하게 되었다. 기대가 되었지만 걱정이 설렘을 앞섰다. 이번에도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미 한 번 해봤지만 거의 42의 비공식 좌우명인 "Life is unfair"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 잘 알기에 부담감이 심했다. 7기까지 진행됐지만 여전히 모호한 42의 선발 기준, 이미 많이 풀린 정보를 보고 단단히 준비해온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재도전자들까지. 정보와 동료가 힘인 피신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최대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서 동료를 얻고 그들의 정보를 듣는 것이었다. 

 

나름 피신을 두 번 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요소, 즉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요소들은 선발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진 않다. 42는 굉장히 잘 짜여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피신 동안에 내가 한 모든 것들이 수치화되어 기록된다. 그 기록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 또는 자기 비하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수치를 갖고 있다 한들 자만해선 안되며, 그 자만심 때문에 남들을 무시하고 교류하지 않는 행위를 해선 절대 안 된다. 또한 자기 비하도 금물이다. 피신 첫 주가 끝나면 피신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생각한 것과 다르거나, 혹은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첫 시험을 0점 맞고 충격받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 못하고 있다고 하여 다음 주의 나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은인을 만나 내 실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일이며, 혹은 그러지 못한다 한들 걱정하지 말라. 우리에겐 다음이 있다. 나는 재도전이 안되던 때에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때의 경험이 내 두 번째 피신을 진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설령 42에 다시 도전하지 않는다 해도 이 경험은 반드시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다.

 

피신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시험과 러쉬가 아닐까 싶다. 우선 시험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험을 망쳤거나 등록을 못 하여 아예 시험조차 못 봤어도 괜찮다. 파이널만 아니면 된다. 파이널에 어떻게든 복구하면 된다. 나 또한 3번째 시험을 망친 경험이 있고, 2번째 시험 등록을 깜빡하여 시험조차 못 봤다던가, 첫 번째 시험 때 시험 시작도 못 해 쫓겨났다던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시험장 입장을 못 했거나, 코로나 걸려서 격리하는 바람에 시험을 못 쳤다던가 등 정말 다양한 이유로 시험을 치지 못했었어도 본과정에 합격한 사람도 여럿이다. (반대로 시험을 빠짐없이 다 쳤지만 탈락한 사람도...) 시험 하나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자. 러쉬도 동일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러쉬는 운빨이다. 정말 운빨이다. 내가 못해도 좋은 팀원을 만나면 버스 타는 거고, 어쩌면 내가 버스 기사가 되어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버스 기사가 없어 각자 운전대 잡고 무면허 운전자처럼 목적지로 가야 할 수도 있다. 팀을 얼마나 잘 만나느냐와 평가자가 누구냐가 정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은 운의 영역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밖에 없다. 러쉬 점수를 못 받았다고 좌절하지 말자. 러쉬 한 번도 점수 못 받았지만 카뎃이 된 사람도 많다. 

 

시험과 러쉬 스트레스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도 안다. 나 또한 첫 피신 때 러쉬 문제를 이해할 수조차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아 속상함과 분함에 밥 먹다 울기도 하고, 시험 전 날 스트레스 때문에 울면서 코딩한 적도 있다. 두 번째 할 때는 피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니까 울진 않았지만, 부담감 때문일까 코딩하는 꿈까지 꿨었다. (러쉬 평가 전 날에 평가받을 때 한 테스트 케이스에 걸려서 0점 받는 꿈까지 꾸었다...) 피신은 정말 네가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나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했었다. 재도전이 없을 때는 설령 떨어진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어가겠다는 마인드로 했었고, 두 번째 할 때는 최대한 스트레스 관리를 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험을 망쳤을 때도 "다음에 복구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시험에서 못 푼 문제를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풀었다.

 

러쉬는 그냥 마음을 놓았다.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가기보단 못 받는다 생각하고 평가 가는 걸 추천. 받을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못 받으면 내상이 크다. 러쉬는 정말 터지기 쉽다. 러쉬 팀원이 갑자기 잠수 탈 수도 있고, 버스 기사님이 단 한 명도 없거나, 비협조적인 팀원을 만나서 팀이 분열된다던가, 어찌어찌 문제를 다 풀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예외 케이스가 있다던가, 평가자의 철퇴를 맞는다는 둥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 다 잘 받은 거 같이 보여도, 위의 일들을 다 피해서 러쉬 통과한 사람이 확률상 몇 있겠는가. 그리고 점수받은 사람들의 팀을 보면 분명 버스 기사님이 있거나 재도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버스 기사님이나 재도전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크겠는가. 만난 사람들이 운이 좋은 거지, 못 만났다 한들 내 탓 아니니까 부디 잠수 타거나 비협조적으로 구는 팀원만 안 만나길 빌었다. 만약 재도전자라면 버스 기사를 만날 것을 기대하지 말고 본인이 버스 기사가 될 각오로 임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이리 생각하며 러쉬에 임했고, 내가 참여한 모든 러쉬에서 버스 기사님은 못 만났지만 그래도 아주 운 좋게 자기 몫은 할 수 있거나 하려고 하는 팀원들을 만나 무사히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러쉬를 0점 맞았어도 합격한 카뎃이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점수를 받았다고만 했지 만점이라고는 안 했다.)

 

피신의 가장 큰 변수는 동료이다. 시험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지만, 과제와 러쉬는 절대 동료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42는 동료를 굉장히 강조한다. 독고다이의 마음가짐으로 피신에 임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쓸 수 있다. 당신은 떨어질 것이라고. 동료 없이는 피신을 진행할 수 없다. 정말 "너 내 동료가 돼라"라고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모 유명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동료를 열심히 사귀어야 한다. 넓고 얕게 사귀든, 깊고 적게 사귀든 상관없다. 낯 가림은 잠시 접어두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바로 옆 사람에게 물어보자. (그렇다고 핑거 프린세스가 되란 말은 아니다.) 절대 혼자는 안된다. 동료가 이렇게 중요한데, 문제는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정말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도 이상한 사람을 만나 기분이 너무 상한 나머지 코드가 안 써져서 그 시간에 퇴근한 적이 두 번의 피신을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없는데 그냥 퇴근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다음 날까지 나쁜 기분으로 출근하진 않았다. 기분 상한 거야 상한 거고, 피신은 피신이니까 내 기분 때문에 피신을 망치긴 싫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도 빨리 그 기분을 정리하자.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든, 취미로 스트레스를 풀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기분을 풀어라. 어차피 피신 끝나면 얼굴 볼 일 없는 사람이다. 만약 둘이 같이 본과정에 같이 간다 한들 피하려면 언제든지 피할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피신의 고통만 조명한 거 같은데, 고통스럽기만 했다면 내가 재도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피신이 정말 즐겁고 재밌었다. 정말이다.)

 

피신의 즐거움 하나, 먹을거리.

원래 살려고 먹는 사람인데, 피신 때는 워낙 몸이 힘든지라 먹는 게 낙이었다. 클러스터가 서초에 있어서 주변에 맛집이 참 많다. 패스트푸드로 먹는 시간을 단축해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난 체력이 모자라 밥이라도 잘 먹어줘야 했다. 왕복 3시간 + 클러스터에 기본 10시간 이상 있음 + 11시 막차 타고 퇴근 = 수면 5 ~ 6시간. 이렇게 살다 보니 밥이라도 잘 안 먹으면 바로 체력이 바닥나는 것이다... 피신하는 사람이 다 나처럼 하진 않지만 나는 부족한 실력을 시간으로 메워야 했기에 식비 생각 안 하고 밥을 엄청 잘 챙겨 먹었다. 

 

피신의 즐거움 둘, 동료들.

피신하던 도중 서버가 말썽을 일으켜 인트라에 접속하지 못해 다들 아무것도 못하던 와중, 피시너 한 명이 터미널로 바밤바를 출력하면 선착순 10명에게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이벤트를 열었었다. 무료하던 차에 생긴 이 이벤트에 즐겁게 참여했고 보상으로 바밤바를 얻었다. (중앙에 있는 배신자 죠스바) 더 많은 재밌는 일들이 있었지만 글로 쓰기엔 너무 길어 가장 인상 깊은 경험 하나를 적었다. 이처럼 피신은 힘든 만큼 즐거운 일도 많이 일어난다. (힘들어서 작은 일도 상대적으로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이번 7기 1차 피신은 전일제에 클러스터 24시간 개방이라 340명이 한꺼번에 같이 피신을 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같이 있는 만큼 좋은 사람도 많았고, 24일이라는 시간 동안 주말 없이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다른 사람과 안 친해지려야 안 친해질 수 없었다. 물론 위에서 썼듯 이상한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런 사람보다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첫 번째 피신 때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1년이 지났지만 합불에 상관없이 여전히 서로 연락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첫 피신, 두 번째 피신 모두 사람 덕에 버틸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힘들다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보다 모두 다 힘드니까 우리 서로 힘을 모아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봐요 하는 사람들을 만나 두 번의 피신 모두 잘 마칠 수 있었다.

 

피신의 즐거움 셋, 나 자신을 알기.

 

위에서 명시했듯 피신 덕에 나는 내 적성을 찾았다. 코딩이 내 천성이고 나는 평생 이것만 하겠다 뭐 이런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서 비전공자로서 단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었던 코딩이라는 영역이 얼마나 재밌는지 깨달았다. 피신을 한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 있다. "내 인생에 이 정도로 열심히 살아 본 적이 없다."이다. 피신을 하다 보면 저런 태도로 임하게 되고, 저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마지막까지 버틴다. 살면서 이렇게 열성적으로 무언가에 몰입하고, 그러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협동해서 어려움을 이겨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피신에서는 이 경험을 할 수 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으로 내가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처하는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피신 동안 알 수 있다. 설령 코딩이 적성에 안 맞다는 것만 깨달았다 한들, 피신을 통해 이것을 알 수 있다면 큰 발견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항상 혼자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던 나에게 동료학습의 즐거움과 유용함을 깨닫게 만든 곳이 바로 42다. 위에서 쓴 저런 태도를 가진 동료들과, 단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열성적으로 코딩에 몰입했던 피신 때 기억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찬란한 추억이 되었다.

 

피신에 대한 내 감상과 이 글을 읽을 예비 피시너들을 위한 팁을 적다 보니 글이 두서없이 길어졌다. 두 번 했지만 피신은 여전히 참 재밌었고, 치열했고, 고통스러웠으나 즐거웠다. 이런 경험을 할 또는 하고 있는 당신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니 다른 사람의 글도 읽어보길 바란다. 질문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달라.)

반응형

댓글